Proud Korean, Ban Ki Moon

Proud Korean, Ban Ki Moon.

- The 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Ban Ki-moon is the eighth Secretary-General of he United Nations. He is first Korean became the Secretary-General of the U.N. His priorities have been to mobilize world leaders around a set of new global challenges, from climate change and economic upheaval to pandemics and increasing pressures involving food, energy and water. He has sought to be a bridge-builder, to give voice to the world’s poorest and most vulnerable people, and to strengthen the Organization itself.

"I grew up in war", the Secretary-General has said, "and saw the United Nations help my country to recover and rebuild. That experience was a big part of what led me to pursue a career in public service. As Secretary-General, I am determined to see this Organization deliver tangible, meaningful results that advance peace, development and human rights.

" Mr. Ban took office on 1 January 2007. On 21 June 2011, he was unanimously re-elected by the General Assembly and will continue to serve until 31 December 2016. Highlights of his tenure include:

Promoting sustainable development

One of the Secretary-General’s first major initiatives was the 2007 Climate Change Summit, followed by extensive diplomatic efforts that have helped put the issue at the forefront of the global agenda. Subsequent efforts to focus on the world’s main anti-poverty targets, the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have generated more than $60 billion in pledges, with a special emphasis on Africa and the new Global Strategy on Women’s and Children’s Health. At the height of the food, energy and economic crises in 2008, the Secretary-General successfully appealed to the G20 for a $1 trillion financing package for developing countries and took other steps to guide the international response and protect the vulnerable and poor.

Empowering women

The Secretary-General pressed successfully for the creation of UN Women, a major new agency that consolidates the UN’s work in this area. His advocacy for women’s rights and gender equality has also included the "Unite to End Violence against Women" campaign, the "Stop Rape Now" initiative, the creation of a "Network of Men Leaders" and the establishment of a new Special Representative on Sexual Violence in Conflict. Within the UN itself, the Secretary-General has increased the number of women in senior management positions by more than 40 per cent, reaching the highest level in the Organization’s history.

Supporting countries facing crisis or instability

The Secretary-General has sought to strengthen UN peace efforts, including through the New Horizons peacekeeping initiative, the Global Field Support Strategy and the Civilian Capacity Review, a package of steps to improve the impact of the 120,000 United Nations "blue helmets" operating in the world’s conflict zones. A mediation support unit, along with new capacity to carry out the Secretary-General’s good offices, have been set up to help prevent, manage and resolve tensions, conflicts and crises. Accountability for violations of human rights has received high-level attention through inquiries related to Gaza, Guinea, Pakistan and Sri Lanka, legal processes in Lebanon and Cambodia, and advocacy for the "responsibility to protect," the new United Nations norm aimed at prevent and halt genocide and other grave crimes. He has also sought to strengthen humanitarian response in the aftermath of mega-disasters in Myanmar (2008), Haiti (2010) and Pakistan (2010), and mobilized UN support for the democratic transitions in North Africa and the Middle East.

Generating new momentum on disarmament, arms control and non-proliferation

The Secretary-General has sought to rejuvenate the disarmament agenda through a five-point plan, efforts to break the deadlock at the Conference on Disarmament and renewed attention to nuclear safety and security in the aftermath of the tragedy at the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Strengthening the UN

The Secretary-Generalhas introduced new measures aimed at making the United Nations more transparent, effective and efficient. These include heightened financial disclosure requirements, compacts with senior managers, harmonization of business practices and conditions of service, the adoption of International Public Sector Accounting Standards, and continued investments in information technology and staff development.


The Secretary-General was born in the Republic of Korea on 13 June 1944. He received a bachelor's degree in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70. In 1985, he earned a master's degree in public administration from the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at Harvard University.

At the time of his election as Secretary-General, Mr. Ban was his country's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His 37 years of service with the Ministry included postings in New Delhi, Washington D.C. and Vienna, and responsibility for a variety of portfolios, including Foreign Policy Adviser to the President, Chief National Security Adviser to the President, Deputy Minister for Policy Planning and Director-General of American Affairs.

Mr. Ban’s ties to the United Nations date back to 1975, when he worked for the Foreign Ministry's United Nations Division. That work expanded over the years, with assignments that included service as Chairman of the Preparatory Commission for the Comprehensive Nuclear Test Ban Treaty Organization and Chef de Cabinet during the Republic of Korea's 2001-2002 presidency of the UN General Assembly. Mr. Ban has also been actively involved in issues relating to inter-Korean relations. The Secretary-General speaks English, French and Korean. He and his wife, Madam Yoo (Ban) Soon-taek, whom he met in high school in 1962, have one son, two daughters and four grandchildren. Since 2007, Mrs. Ban has devoted her attention to women’s and children’s health, including autism, the elimination of violence against women, and the campaign to prevent mother-to-child transmission of HIV/AIDS.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 인디코리아와 찾아가는 자랑스런 한국인 (1) -

인디코리아에서는 TV와 인터넷 등 매체 상에서 얼핏 보아 어느정도는 알고 있지만 정작 한국을 빛낸 인물들에 대해서 더 자세한 정보를 나누어 현존 또는 생전에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들을 소개하는 순서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를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첫번째 순서를 장식하게 될 인물은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50년대 말 창고업을 하시던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기 전까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버지가 정미소에서 일하는 등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는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다. 출신은 음성이지만 당시 공부 잘하던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충주로 진학했다. 당시 가난한 집안이였지만 집안일을 도우면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고, 그럼에도 으스대지 않고 진중한 성격이라 동네 어른들은 그를 어른스럽고 내성적인 학생이라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좋아하여 '충주의 영어 신동'으로 불리던 그는 충주고 3학년(1962년) 적십자사 비스타(VISTA) 프로그램의 한국대표 4명에 뽑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이때 미국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충주여고 학생들이 복주머니를 만들었고 충주여고 학생회장이 반기문 학생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그 학생회장이 바로 반기문 사무총장의 아내인 유순택 여사이다. 미국으로 간 후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와 대화를 하는 중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할 시간이 있었는데 당시 그 만남에 참여했던 한 저널리스트가 장래 희망을 물어보자 그는 "외교관이 되겠다"고 말했고, 결국 그 꿈의 정점에 올랐다. 충주고 졸업 후 청년이 된 반기문은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한다. 당시 동창이었던 여성국 사장(대우버스 주식회사 사장)의 말에 따르면 강의 노트가 정말 꼼꼼하고 하나도 빠지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더 정리가 잘 되어 있어 동기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서로 보겠다고 경쟁이 치열할 정도였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한 반기문은 1970년 제3회 외무고시에 차석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1971년에 류순택여사와 서울 동작구 흑석동 1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된다.

고시는 차석을 했지만, 신입 외교관 연수를 마칠 때 수석을 차지한 반기문은 그의 첫 부임지를 인도 뉴델리로 선택한다.모든 외교관의 제 1지망이었던 워싱턴을 포기하고 뉴델리로 간 이유는 어머님께 집을 사드리고 싶은 이유였다고 합니다. 위험지에 대한 특별수당을 모아 집을 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듯 한때의 마시멜로를 참은 반기문에게 이 후 자신의 롤모델로 삼을 인물을 만나게 된다. 당시 주 인도대사였던 노신영 전 국무총리를 만나게 되는데 노 전 국무총리는 당시 반기문에게 "인도 공관에는 나와 반 서기관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을 정도로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외유내강, 성실, 근면, 책임감, 따뜻한 카리스마. 반기문의 주변인들이 그에 대한 평가들이다. 학생 시절부터 꼼꼼한 노트정리로 유명했던 그는 일 처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데 인도대사관 근무 시 그가 보여 준 완벽한 일 처리와 겸손함이 노신영 전 국무총리에게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우수한 업무능력 외에도 그의 따뜻한 카리스마를 미국 근무 시절 같이 일했던 전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후 노신영 국무총리의 발탁으로 인해 의전비서관에 오르게 된다. 그의 주요경력을 보면 인도대사관과 유엔 1등 서기관, 유엔과장, 주미대사관 참사관, 미주국장을 거거쳤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내고 2001년에 외교통상부 차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2001년 9월 제56차 유엔총회의장 비서실장, 2002년 9월 동 본부 대사, 2003년 2월에 참여정부의 외교정책 보좌관을 지냈으며, 2004년 1월에는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2006년 1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2006년 2월 유엔사무총장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반기문은 처음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은 승산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반기문은 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으로서 사무총장 선거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되는 전략으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의 모든 나라를 순방할 수 있었다.

2006년 10월 14일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엔 그의 당선을 예상한 외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에 돌아갈 차례였던 당시 사무총장직을 놓고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와 경쟁하였다.[1] 하지만 8대 유엔 사무총장을 뽑는 1차 예비투표에서 그는 15개의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회원국 중 13개국의 찬성을 받아 1위에 오르게 되고, 2차 투표에서 14표, 3차 투표에서 13표를 얻었고, 마지막 4차 투표에서 그는 7명의 후보를 제치고 안보리 15개 나라중 14개 나라의 지지를 받아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특히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중동, 아프리카 국가의 그에 대한 지지는 대단하였으나, 10월 2일의 최종 비공식 설문조사까지 일본은 기권표를 던졌다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찬성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2007년 2월 6일 유엔 총회장에서 192개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그는 비대해진 유엔 평화 유지 활동국(DPKO)을 업무별로 2개 부서로 분리하고 군축 부서를 사무총장 직속에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엔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또 기구 개편안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지를 촉구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21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인류평화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사상 이례적으로 15개 상임이사국과 유엔 전 회원국을 대표하는 5개 지역그룹 의장의 연임 추천을 받아 유엔 총회에서 192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유엔 사무총장직에 재선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그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에게 헝가리 국민봉기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소련군이 헝가리를 무력으로 침공했기 때문이었다. 반기문은 당시 "헝가리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유엔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어린 나이이지만 당돌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는 곧은 성격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를 걸어온 사람들에게 반드시 회신을 해주며, 수많은 연하장을 보낼 때도 자신의 이름은 직접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계획한 일과 맡고있는 직책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해 나가는 자세는 현재의 반기문총장을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

반기문은 2013년 포브스 선정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서 한국인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전 세계에서 32번째로 한국인으로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됐다.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찬 우리의 일상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세계 193개 회원국의 리더들이 모인 단체의 수장으로 세계 평화와 인권, 그리고 지구 온난화 등 나라와 인종을 떠나 인류를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되살릴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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