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 인생의 전환점 Immigration, turning point of my life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미국 이민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던 저는 40대가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마침 미국에 있는 친척 분이 사업을 정리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딪혀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내와 두 딸들이 고맙게도 결정에 찬성해 주었고 그 해 4월 1일에 도착해 5월 1일에 비지니스를 바로 맡아 운영을 시작하는 의욕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처음 하는 사업이다 보니 여러 가지 시행 착오들과 경쟁 업소와의 가격 경쟁 등으로 적잖이 힘든 시간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짧은 기간이었지만 직원들이 없어서 아내와 둘이서 사업장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면 혼자하는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곤란할 때도 많았고 때론 매출이 시원치 않아서 걱정을 하는 아내에게 ‘다 잘될거야’라며 안심을 시키고 홀로 잠 못이루며 소주 한 잔 들이킬때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런 시간들이 지금 제 인생의 단단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족과 위기는 나의 힘

모든 사업은 묘목을 옯겨 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첫 해에는 뿌리가 잘리고 가지가 잘린 상태에서 추운 겨울을 겪어야 하고 둘째 해에 실뿌리가 나와, 세째 해 부터 비로소 제대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현재의 위치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요인은 지금의 좋은 가족(직원)들을 만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15년을 같이 한 가족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또한 다른 한가지 요인은 이곳 인디애나폴리스의 뷰티서플라이 비지니스는 다른 주와는 달리 협회를 중심으로 사업장 간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협조를 통해 극심한 가격 경쟁도 피하고 서로간의 상권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된것이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위기의 순간은 다가왔고 위기의 순간에 움츠려 들기보다는 그 위기를 극복하고 지혜를 모아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에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큰 위기가 닥쳤을때 오히려 사업장을 두배로 확장하고 과감한 도전을 한것이 저에겐 큰 플러스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도전 정신과 경험으로 두번째 세번째 지점까지 여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가족과 같은 이웃

인디애나 뷰티 서플라이 협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90년대 초반에 발촉되었고, 전국 지역 협회중 가장 우수한 협회 중 하나로 타 주 협회들과는 달리 사업자 간 대화와 양보로 소비자들이 더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고정 고객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힘쓰며 고객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매년 인디애나 주민들을 위한 Outreach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일부 협회원들과 가족 여행을 다녀 온것을 꼽을수 있습니다. 사실 동종 업계 사업자들과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저희는 협회원들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가족과 같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교훈 “눈사람”

처음 사업을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사업은 눈사람을 만드는 일과 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탕이 되는 눈덩이를 부서지지 않게 단단히 뭉쳐야 하고, 주위를 유심히 둘러본 후에, 눈이 많이 쌓여있는 곳을 향해서 열심히 굴려가야 합니다. 소중하게 만든 눈덩이를 꾸준히 굴리는 단순 반복의 과정 속에서도 미래를 계획하고 남들과의 경쟁속에서 눈덩이가 부서지지 않도록, 또한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키면서 모든 어려움을 뚫고 만족할 만한 눈사람으로 완성되었을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것입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서 얻은 또 다른 교훈은 “Easy come, Easy go” 라는 말입니다. 쉽게 얻은 것들은 쉽게 잃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비록 지금은 지치고 힘들더라도 꾸준히 지켜 나간다면 꼭 성공의 밑거름이 될거라고 믿습니다.

한인 사회와 인디코리아.

인디애나에는 한국인들을 대표하는 한인회가 없기때문에 그 필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제 바램은 한인들을 대표할 수 있는 곳이 생겨 도움이 필요한 한인들에게 힘이되고 우리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저 또한 그 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디코리아는 인디애나 한인 여러분들이 많이 기다려왔던 지역 매거진이었고, 현재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무쪼록 편향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으며 항상 한인들의 편에 서있는 매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바쁘신 스케줄 중에서도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편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신 우혜수 사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Turning point of my life through immigrating to America

Before I came to the United States, I owned a small business in Korea. As I turned 40 I wanted to make some changes in my life. I heard that my relative in the states was closing his business down and I wanted to give it a try. Thankfully, my wife and our two daughters agreed to this move. After arriving in the states on April 1st, I eagerly took over the business on the following month. I was determined to become successful. But being new to this type of business I ran into a lot snags with operating and competing with other businesses. I also had some issues with my employees because I wasn’t able to communicate well with them. At times it was just my wife and I working at the store. When she would go out to get our daughters, I often had to skip eating and even going to the restroom. When the times got hard, I would tell my wife that everything will go well, but would stay up worrying about the business. But the times like these helped building the foundation of my life.

 

Strengthened from my family and through crisis

My philosophy in business is that it is like planting a tree. First year you have to make sure the tree is rooted well and go through painful pruning process. And finally, about on the third year, the tree grows most ideally. The reason I was able to succeed is because I became as close as a family with my employees. One other important reason is because of the Beauty Supply Business Association. Beauty supply businesses in Indianapolis have gathered together in order to avoid unnecessary competition, and to protect one another. I was very fortunate to start my business in Indianapolis. Every time I encountered crisis, I used it as a stepping stone by taking the risk. It served me very well when I expanded and doubled the size of my business, when this crisis came. Taking on this challenge helped me to open the second and the third location.

 

Family like neighbors

Indiana Beauty Supply Association was launched in 1990. We are one of the modeled business associations throughout the states. With much respect and care for businesses within the association, we were able to provide better products at an affordable price to all customers. In order to give back to the community and to get closer to our customers, we hold annual community outreach events.

 

The most memorable event living in the U.S.

To some, it may not seem much of a big deal, but one of the most memorable event for me was going on a family trip with other beauty supply business owners. It’s not easy to get along with people in the same business, but we do our best to keep the relationship healthy and family-like.

 

A lesson from a “Snowman”

To those starting a new business, I would like to say that business is like building a snowman. You must make sure the core is hard enough not to break. You have to look around in order to find the ground with a lot of snow so you can roll the snow on it. The job may seem repetitious, but through this repetitive process you must continue to plan for the future so that your snowball does not break, nor get taken away. Once you go through the obstacles and push through difficult plains, America will be a land of opportunity. I also experienced the old saying “easy come, easy go.” It is easy for me to lose the things I earned without much effort. If you are persistent and endure through the difficult times, it will become a stable foundation of your future success.

 

Korean community and Indy Korea.

Indiana does not have an official Korean American Association, but we are in need of one. My wish is that we eventually make an association in order to represent the Korean community, and to help our neighbors through good times and difficult times. I want to help building this association and support in any way I can. For that matter, Indy Korea was something I have been waiting for and currently is being well received. I hope that you don’t lose your initial resolution and become the magazine who represents and stands for the Korean community of Indiana.

 

“Big thank you to Mr. Woo for the pleasant interview, despite your busy sched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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